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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산촌생활박물관 체험프로그램 ‘민화교실’ 운영▲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체험프로그램 민화교실 운영 = 사진설명 (파이널24) 김수룡 기자 = 영양군(군수 오도창)은 지난 9월 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체험프로그램 ‘민화교실’을 진행하였다. 민화교실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그간 농촌에서 바쁜 일상에서도 무언가 배우고 싶은 지역주민을 위하여 전통 민화 수업을 통해 자기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마련하였다. 이날 참석한 박○○님은 “영양에 홀로 귀촌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 낮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저녁에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일상이 무료했는데 마침 영양산촌생활박물관에서 민화교실을 운영한다고 해서 와보니 민화 그리기가 너무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라고 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앞으로도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이 활력소를 찾고, 소통의 시간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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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교육지원청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여름계절학교 운영 -[파이널24]영양교육지원청은 7월 26일부터 8월 6일 10일간 관내 초·중·고등 특수교육대상 학생 13명을 대상으로 영양교육지원청 3층 영재지원센터에서 ‘특수교육대상학생 여름계절학교’를 운영한다. 이번 여름계절학교는 코로나 19로 인해 두 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씩 실시한다. 여름계절학교는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이 방학 기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사회적응훈련을 기르며 여가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계절학교 운영 내용은 직업활동(포일 아트 만들기, 냅킨공예 에코백 만들기, 플러쉬크래트 감각발달 인형 만들기, 스탠실 공예 부채 만들기, 스트링 아트 안개꽃 꽃병 만들기), 요리활동(파베 초콜렛 만들기, 철판 아이스크림 만들기, 샌드위치 만들기, 꼬마 김밥 만들기) 체육활동(테이블 하키, 볼링) 및 관내의 영양산촌생활박물관,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 현장체험학습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소양자 교육장은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체험으로 학생들이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고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활동이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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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수백 년간 잊혀졌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건립한 ‘계정(谿亭)’의 석각(石刻) 발견(파이널24) 이재덕 기자 =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이영재 학예연구사는 11월 12일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241전의 하천변에서 조선 중기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거두(巨頭)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건립하여 벗들과 소요하며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삶을 실현했던 정자인 ‘계정(谿亭)’의 석각(石刻)을 발견함으로써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잊어야만 했던 중요한 유적지를 되찾게 되었다고 밝혔다. 조선 중기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맥을 이어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거두(巨頭)가 된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은 영산서원(英山書院)의 원장을 역임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과 최초의 한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여중군자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의 둘째 아들이다. 갈암은 20대 중반에 들어선 1653년 부모가 낙토(樂土)를 찾아서 보다 깊은 산속으로 은거(隱居)를 선택하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로 이주하여 ‘수산유허비(首山遺墟碑)’ 부근에 ‘갈암(葛庵)’이라는 집을 짓고 19년 동안 거주했다. 갈암이 지은 ‘계정기(谿亭記)’에 의하면 어느날 아버지를 모시고 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신원천(新院川) 가를 걷다가 기이한 바위와 맑은 물소리가 어우러진 명승지를 발견하여 그곳에 ‘계정(谿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이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바위에 두 글자를 석각했다고 한다. 기문과 문집에 의하면 갈암을 비롯하여 석계 일가는 ‘계정’에서 밤낮으로 학문을 닦으며 여가를 즐겼다고 함으로 이 정자는 조선 중기 선비들의 이상적인 삶이었던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삶을 현실에서 구현한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계정’에서 학문을 닦은 석계의 아들들이 모두 당대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갈암의 경우 조정에 출사하여 벼슬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름에 따라 1672년 석계 일가가 수비를 떠난 뒤에도 그들의 유거지와 정자는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서 방문하고 싶은 지역의 명소였다. 하지만 1694년 폐비 민씨의 복위운동에 인해서 시작된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인해서 남인계가 몰락하자 갈암 또한 탄핵되어 유배를 가기에 이르렀고, 1909년에 가서야 관직과 시호가 모두 회복됨으로써 후손들에 의해서 ‘수산유허비’ 건립이 추진되는 19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잊고 있어야 하는 장소였다. 그로 인해서 1865년 후손과 후학들이 ‘수산유허비’를 건립함으로써 석계 일가가 살았던 유거지는 고증되었으나 갈암이 형제들과 학문을 닦고 소요했던 ‘계정’은 1931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서 이곳을 지나간 수산(秀山) 김병종(金秉宗, 1870-1930)이 ‘세대가 오래 되어 초당과 계정의 위치를 알 수 없다[世代綿邈 草堂谿亭 無所指認]’라고 쓴 기록처럼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역사적 질곡으로 인해서 수백 년간 잊혀져야만 했던 갈암의 ‘계정’이 2019년 5월부터 영양군 문화시설사업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산유거지 복원사업>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이영재 학예연구사가 11월 12일 ‘수산유거지’에서 동쪽으로 약 950m 떨어진 바위에서 ‘계정’이라는 석각을 발견함으로써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영재 학예연구사는 “복원사업 용역을 추진하고 있는 안동대학교 산학협력단의 단장인 배영동 교수로부터 ‘현지인이 바위에 ‘석〇(石〇)’ 또는 ‘석계(石溪)’라는 석각을 봤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지인과 동행하여 확인해 본 결과 그 석각은 갈암 선생의 정자가 있었던 ‘계정’이었다.”라고 발견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했다. 군수 공약사항으로 선정하여 취임 이후부터 <수산유거지 복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오도창 영양군수는 “수백 년간 잊혀졌던 갈암 선생의 정자를 다시 찾게 된 것은 지역사의 발굴과 유거지 복원사업에 있어서 모두 대단히 중요한 성과로 이를 바탕으로 보다 실증적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가 설정된 것이다”라고 ‘계정’ 발견의 의미를 평가했다.